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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물 곳을 잃다 by 아라이


자주 가던 한 카페가 있다.
음악 선곡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곳.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 아니라서 늘 그 좋은 음악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묻히곤 했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좋아 종종 찾아가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몇 시간이고 시간을 떼우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음악 선곡 외에도 그곳을 가는 다른 이유가 하나 민들레 씨앗처럼 조용히 와 내려앉았다.

그곳에는 여러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 중 그 중 이상하게 시선이 가던 사람이 있었다.
조금 작은 키에 머리카락은 늘 짧게 치고 옷은 늘 청바지 차림에 간편한 티 또는 니트를 걸치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들과 달리, 신발은 늘 굽이 있는 예쁜 구두를 신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갔던 것은 왜였을까?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런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언제부턴가 그 카페에 가면 내 눈은 그녀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그녀는 일을 잘했다.
착실하고 또 열심이었다.
다만 표정은 늘 딱딱하고 손님들에게 잘 웃지 않아 그것으로 매니저에게 자주 지적을 받았다.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 무표정하지만 차분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그나마 손님이 적을 때 가끔 동료들하고 얘기하며 작은 미소를 보이긴 했다.
그녀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게 괜히 놀라워 언뜻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까닭없이 마음이 따스해지곤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그녀를 봤다.
이제는 알아보고 '오랫만이네요.', '안녕하셨어요?' 하는 인사도 나누게 됐다.
여전히 그 외의 대화는 없었고 또 더 이상의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었지만, 
가끔은 그 사실이 괜스레 간지러워져 웃음이 나오곤 했다.
그때 그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카페를 찾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자연히 발길이 닿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 오랫만에 카페를 찾았다.

그곳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인테리어가 바뀐 것도, 
음악 선곡이 바뀐 것도, 
커피의 맛이 변한 것도, 
손님들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 시선을 가끔 빼앗던 그 사람이 그곳에는 더 이상 없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익숙해진 매니저나 다른 직원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묻지 않았다.
그냥 알았다.
그만뒀구나.

나는 커피를 시키고 빈 자리에 앉아 차분히 책을 펼쳤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
얼마 전 아는 동생의 병문안을 가서 이 책을 선물하며 다시 읽어지고 싶어 가방에 넣었던 책이었다.
휘리릭 책을 넘겼다. 
마지막의 「사랑의 샘」으로 단번에 페이지가 넘어가고 거기서부터 천천히 시선이 활자를 읽어갔다.

사랑의 샘」은 도리고에 집안의 이야기였다.
1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에 시들어가는 할머니를 위해 손자 손녀들은 머리를 모은다.
그리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첫 데이트를 했던 영화를 상영하기로 하고 이리저리 고군분투를 한다.
상영관을 알아보고, 영화 필름을 찾고, 그것을 개봉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버리지' 라고 말하는 짓궂은 교수의 어드바이스를 통해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간다.
그렇게 손자 손녀들의 이야기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먼 옛 이야기들이, 도리고에 집안의 이야기들이 봄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뿌려진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환희 웃고 또 감동하다보니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노래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처음 듣는 곡이라 찾아보니 윤하가 피처링한 '소풍'이라는 노래.
어쩐지 먼 기억을 더듬게 하는 노래고 목소리였다.
내가 윤하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다.

사실 「사랑의 샘」을 읽다보면 한 사람이 떠오른다.
얼굴도 모르고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사는 것도 이름도 모르지만, 한 때 꽤 호감을 가졌던 사람.
사랑의 샘」에서 그녀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언젠가 외할머니를 위해 가족들이 밴드를 이뤄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조곤조곤한 글을 쓰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람의 따스한 글을 꽤 좋아했다.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또 글에 대한 길고 긴 댓글을 달게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 사람에게 꽤 호감을 가졌지만 나는 특별히 그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카페에 더 이상 없는 그녀에게처럼 그저 조용히 뒷모습을 쫓았을 뿐이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소풍'이라는 곡을 반복해 듣는다.
어쩐지 더 이상 지켜볼 사람이 없는 게 허전했다.

사랑,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쉽지만 호감도 아니었다.
그렇게 발전할 일은 없었고, 또 내 마음이나 상상 속에서도 그런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가끔 시선이 갔을 뿐이다.

이제는 호감을 가져지는 것도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커피가 썼다.
왠지 이 카페에는 더 이상 발이 잘 안 닿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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